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여성/여성단체
가천대 이길여 총장 특별 인터뷰
"박애·봉사·애국을 실천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기사입력: 2015/06/09 [11:44]  최종편집: snjournal.com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이명예 기자

▲ 가천대 이길여 총장                                                                                                        © 성남저널

총장님은 저희 성남시여성단체협의회에서 닮고 싶은 여성 1위에 선정된 분이십니다. 여성들의 선망의 대상인 성공한 여성 CEO이지만 처음 산부인과를 열 때는 무척 어려웠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처음 산부인과를 개원했을 때 어려웠던 것들을 회상해 주시면요?

- 제가 산부인과를 선택한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결정이었습니다. 저는 누군가 이 땅의 여성들에게 건강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돌봐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 역할을 맡기 위해 주저 없이 산부인과를 선택했습니다.

당시 남자 의사를 내외해서 병원을 안 찾는 여자들이 많았어요. 항생제 하나만 있어도 치료할 수 있는 병인데 병원을 찾지 않아 몸이 상하는 경우가 허다했죠. 아이를 낳다가 산모가 목숨을 잃는 경우도 많았고 산후조리를 소홀히 해서 일생 후유증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여자들도 많았습니다.
 
의사가 된 후 자연스럽게 의료봉사의 길로 나서게 됐습니다. 1958년 인천에 산부인과를 세운 후, 서해 낙도를 순회하며 무료진료활동을 벌이고, 여성들을 대상으로 자궁암 무료검진을 시행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있습니다.
 
내가 의사활동을 시작한 1960년대는 우리나라가 너무 가난했습니다. 병원시설과 약품 등 모든 것이 부족했습니다. 진료를 하면서, 돈이 없어 병원치료를 못 받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됐습니다. 이들이 안타까워 보증금 없는 병원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여자 의사가 흔치 않았고 친절하다는 소문까지 나 잠잘 시간도 아까울 만큼 바쁘게 생활했습니다. 어머니는 20대 후반인 딸이 혼기를 놓칠까 “선봐서 결혼하라”고 성화셨어요. 

하지만 저는 맞선 볼 시간에 환자 한 명이라도 더 보겠다고 고집했지요. 환자들을 고치는 일이 더 중요했으니까요. 오히려 선진 의료기술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으로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됐습니다.  

외출은 꿈도 꾸지 못했고 계절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병원 밖에까지 길게 줄을 선 환자들을 두고 식사를 할 수 없어서 하루 한 끼만 먹으며 진료에 매달리기도 했지요.
좀 더 많은 환자를 보기 위해 진찰실에서 바퀴달린 의자를 만들어 사용했어요. 시간을 절약하려고 침대 3개를 놓고 의자를 밀면서 다녔죠. 방향이 조금 엇나가면 벽에 부딪히거나 침대 모서리에 부딪히기 일쑤였어요.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올 때 사온 예쁜 핑크색 잠옷이 있었는데, 한 번도 입어보지 못했어요. 잠옷을 갖춰 입고 침대에서 제대로 잘 수 있는 기회가 없었던 거죠. 사온지 10년쯤 지나니 살이 쪄서 어깨 부분이 껴 그만 입을 수 없게 됐어요. 그래도 지금까지 장롱에 넣어두고 있습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냈지만 순간순간이 행복했어요. 이제 다 나았다는 소리를 매일같이 수백 명에게 들으니 얼마나 신나고 즐거웠겠어요.

2. 의사의 꿈을 키우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 길고양이나 주인을 잃어버린 강아지들을 돌보면서라고 들었습니다. 의사로서 가져야할 가치관이 있다면요?

- 어렸을 적 우리 집에는 강아지와 고양이 여러 마리가 있었습니다. 모두 버려진 동물들로 다리가 부러지거나 심한 상처를 입어 내가 길에서 데려다 키운 것 들 이었습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다가 다리가 부러진 강아지를 친구들이 막대기로 쿡쿡 지르며 돌을 던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강아지를 안고 집으로 돌아와 깨끗이 씻겨준 뒤 부러진 다리에 부목을 대고 붕대를 감아주었습니다. 강아지 뿐 아니라 고양이, 무릎이 까진 친구들까지 모두 돌보게 되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의사놀이를 하게 된 것입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초등학생 때 소꿉친구가 전염병으로 죽었는데, 어린 가슴에 충격을 받았죠. 아픈 사람을 고치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그때 처음 가졌던 것 같아요.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을 한 건 열다섯 살 때입니다. 평소 감기 한 번 걸리는 일 없이 건강하셨던 아버지가 몸살 기운이 있다며 앓으신지 닷새 만에 돌아가셨거든요. 집안어른들께서 “일본에서 병이 났으면 병원 치료를 받을 수 있었을 텐데”라고 하셨던 말씀을 잊을 수 없었어요. 그 후 의사가 되겠다는 결심은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습니다.
 
의사가 환자를 치료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성이에요. 환자를 고치고 살리는 것은 첨단 의료기기나 의사의 실력이기보다 환자를 반드시 고치고 말겠다는 정성과 믿음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언젠가 후배 의사가 저에게 “왜 선생님은 힘들게 환자를 안아 일으키느냐”고 물은 적이 있어요. 처음에는 환자를 위로하고 친밀감을 주기 위해 안아 일으켰는데 오래지 않아 그것이 또 다른 진찰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환자를 안아 일으키면서 열이 있는지, 심장 소리, 숨소리가 어떤지 느껴졌어요. 환자를 안아 일으킬 때 가뿐히 일어나는 분은 경과가 좋은 분이고 무겁게 안겨오는 환자, 아직 몸에 열이 있고 숨소리가 가쁜 환자는 아직 치료 기간이 오래 남았다는 것을 알게 했습니다.

병원에 들어서면 환자들은 긴장하게 마련이에요. 저는 환자들의 불안한 마음을 풀어주는 것이 의사의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권위적으로 환자를 대하는 의사는 참된 의료인이라고 할 수 없어요.
 
제가 진료할 때 청진기가 차가워서 환자가 움찔 놀라는 걸 보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내 품 안에서 따뜻하게 데워서 사용했더니 환자들의 반응이 한결 편안해졌어요.
저는 의대생이나 수련의들에게 “환자를 가슴으로 대하고 있나요?”라는 질문을 자주 던져요. 의사는 늘 가슴 속에 자신만의 따뜻한 청진기 하나씩을 품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 산부인과를 처음 열면서 첫째도 봉사, 둘째도 봉사, 셋째도 봉사라는 세 가지 원칙을 정했다는 글을 본적이 있습니다. 여성들의 자원봉사 활동 기관인 성남시 여성단체협의회 회원들에게 봉사의 참 의미를 말씀해 주신다면요
 
- 어느 날 병세가 깊은 환자가 진찰을 받은 후에 다시 옷을 입고 돌아가려는 겁니다. “당장 수술을 해야 하는데 왜 그러냐”고 하니 “보증금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보증금 없어도 수술하고 치료해주겠다”고 하니까 “정말이냐”고 거듭 묻더군요. 

당시 돈을 못내는 환자들이 많아 치료비를 떼이는 것을 방지하려고 병원에서 선불 형식으로 보증금을 받는 것이 관행이었어요. 저는 돈 없는 사람들도 와서 치료받고 수술 받고 입원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우리 병원이 보증금 없는 병원으로 알려지면서 가난한 환자들이 몰려들었지만 병원은 잘 운영되었습니다. 치료비를 내지 않았던 환자들은 그 보답으로 병원에 대한 좋은 소문을 내줬고 형편이 되면 일부라도 꼭 갚으려고 애썼어요. 병원비를 내지 못한 분들이 각종 농작물이나 수산물들을 가져와 병원 마당이 시장 같을 때도 있었어요.

봉사는 자기 행복을 저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가진 것이 물질이든 건강이든 마음이든 그것을 남에게 주어서 남을 행복하게 만든 그 행복은 결국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남에게 베푸는 것은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돌아와 새 희망을 잉태하게 한다는 것이 저의 일관된 신념이기도 합니다.
 
▲ 이길여 총장 "가천길재단의 재단이념이자 가천대학교의 교육이념은 ‘박애·봉사·애국’을 실천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4. 의사에서 현재는 교육계를 이끌고 있는 대학 총장님이십니다. 의사에서 교육을 이끄는 CEO로 활동 영역을 넓혀 나가는데 어려운 점은 없으셨습니까?

-1970년대 후반, 병원은 국가와 국민 모두의 것이라는 생각에 의료법인 설립을 계획 했고 1978년 150병상 규모의 ‘의료법인 인천 길병원’을 개원하게 되었습니다. 주변에서는 갑자기 병원을 크게 지었다가 적자가 나면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했지만 개원 3년 만에 두 배로 시설을 확장했어요.

의료법인을 출범시키면서 우수의료인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설립에 대한 열망이 절실해졌습니다. 1997년 가천의과대학을 세웠고 경영난을 겪고 있던 경원대를 인수해 오늘날 가천대로 통합을 이룬 것입니다.

제가 인생의 전반부를 ‘사람의 생명을 고치는 의사’로서 살았다면, 인생의 후반부는 ‘인재를 키우는 교육자’로 살고 있는 셈입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대학역사에 없는, 대학을 세 번이나 통합해 글로벌 명문으로 성장할 가천대학교를 출범시켰습니다. 박애, 봉사, 애국의 교육이념아래 사회와 국가, 인류에 기여할 수 있는 창의성을 갖춘 글로벌 인재를 양성할 것입니다.

아울러, 앞으로 기초의과학 분야의 발전을 통한 인류공헌, 그리고 세계에 코리아를 빛내 줄 인재를 양성하는 일에 전력할 생각입니다. 정부로부터 이미 세계수준의 연구중심대학(WCU)으로 선정된 이길여 암당뇨연구원과 뇌융합과학원, 가천바이오나노연구원을 인류건강에 기여하는 연구소로 발전시켜, 기초의과학 발전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 나갈 것입니다.

5. 여성으로서 일과 가정을 모두 책임져야 하는 한국 사회 분위기가 점차 무너져가고는 있지만 아직도 여전한 것이 현실입니다. 성공한 CEO로서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 성공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습니다. 다만,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어요. 오늘을 열심히 사는 것은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서예요. 지금도 잠들기 전 ‘오늘 하루 내가 열심히 살았나?’하며 나에게 물어요. 흐뭇한 웃음으로 잠자리에 들 때 참 행복하고, 하루하루 늘 그런 날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남녀편견이 만연한 시대를 살아왔다고 할 수 있지만 “여성이라 꿈을 이루지 못한다”는 말은 인정할 수 없습니다.  능력이란 자신에게 주어진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내는 것이며 여성이라서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나는 여성이기에 환자를 더 세밀하고 섬세하고 대할 수 있었습니다.

여자라서 힘들다거나 못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열정을 갖고 도전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지 남성인지, 여성인지는 큰 상관이 없습니다. 일을 하다 보면 실패도 있을 수 있지요. 그러나 그것은 여성이라서가 아니라 최선을 다하지 않은 탓이에요. 무슨 일을 하든 여성이라서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진 게임이에요. 그건 남성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6. 나라 사랑에 대한 생각이 무척 크신 것으로 전해 듣고 있습니다. 여성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어떻게 나라를 사랑해야 하는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6.25전쟁 시기에 의대를 다녔습니다. 함께 공부를 하던 많은 남학생들이 전쟁에 나가 살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이들에 대한 미안함이 컸기에 국가와 사회를 위해 봉사해야겠다 결심했고, 의사가 된 후 자연스럽게 의료봉사의 길로 나서게 됐습니다.

1960년대는 우리나라가 너무 가난했습니다. 병원시설과 약품 등 모든 것이 부족했고, 돈이 없어 병원치료를 못 받고 죽어가는 사람들도 많았지요. 지금은 의사가 넘쳐나고 있지만, 1980년대 초반까지 휴전선과 가까운 백령도와 철원, 양평 등의 지역에는 의사가 없었습니다. 당시 지역주민들이 저를 매일 찾아와 ‘사람이 제때 치료를 못 받아 죽어나가니 병원을 세워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참모들이 ‘적자경영이 불가피하므로 안 된다’고 했으나, 아무도 나서지 않아 결국 내가 병원을 운영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저는 일을 시작할 때, 이 일이 우리 국민들에게 또 인류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 지를 먼저 고민합니다. 가천뇌융합과학원이나 이길여 암·당뇨연구원을 세웠을 때, 2천억 원을 투자한 기초과학연구는   사실 결과물이 바로 나오는 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재단 내의 모든 사람이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과학 발전을 위해서,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난치병의 퇴치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연구 사업이라는 생각 하에 투자를 시작했습니다. 현재 두 기관은 단기간 해외 정상급 연구소로 자리잡으며 연구에 눈부신 발전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것은 내가 할 수 있는 박애요, 봉사요, 애국입니다.

나는 앞으로도 가천길재단의 재단이념이자 가천대학교의 교육이념은 ‘박애·봉사·애국’을 실천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 성남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목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